박재란 나이 고향 일제강점기 출생 학력 앙드레김 뮤즈 남편 박운양 외도 이혼 우울증 미국행 딸 박성신 나이 돌연사 사망

박재란 나이 고향 일제강점기 출생 학력 앙드레김 뮤즈 남편 박운양 외도 이혼 우울증 미국행 딸 박성신 나이 돌연사 사망

박재란·요요미가 나이를 초월한 호흡을 '우리말 겨루기'에서 펼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말 겨루기'에 박재란·요요미가 출연해 다정한 선후배 호흡을 보여주며 '명예 우리말 달인'에 도전했다.

 


1960년대 대중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원로 가수 박재란이 유쾌 발랄한 매력의 요요미와 트로트 가수 선후배로 함께했다.

 


두 사람은 서로 노래를 주고받으며 나이 차이를 잊게 할 정도로 척척 맞는 호흡을 자랑했고 특색있는 목소리로 귀를 사로잡은 두 사람은 시종일관 다정한 모습을 선보이며 훈훈한 분위기를 보여줬다.

박재란은 본명 이영숙이고 1938년 생으로 올해 나이 83세로 고향은 일제 강점기 조선 경성부 출생이다.

 


학력은 천안국민학교를 졸업하였고 천안여자중학교를 중퇴했다.

1961년 노래 '럭키 모닝'으로 데뷔하였다. 이후 ‘산 너머 남촌에는’, ‘왜 몰라요’ 등 발표하는 곡마다 히트시키며 일찌감치 국민가수 반열에 올랐다.

 


박재란이 착용하는 미니스커트와 유리구두 등 패션 아이템은 매번 화제였고, 패션 디자이너 고 앙드레 김에게 의상을 선물 받으며 그의 뮤즈로 자리매김했다.

 

 

 


가족관계로는 전남편 박운양(이혼), 딸 박성은, 딸 박성신을 두었다.


둘째딸 박성신은 1968년 11월 22일 생이고 고향은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박성신은 1987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회상》이라는 노래 작품으로 첫 데뷔하여 1년 후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비 오는 오후》라는 노래 작품으로 가창상을 수상하였고 이듬해 1989년 《한 번만 더》라는 노래 작품으로 공전 히트를 거둔 가수이다.

 


2014년 8월 8일 지병인 심장질환으로 돌연사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했던 가수 박재란이 힘겨웠던 인생사를 들려줬다.

 


1960~1970년대 톱가수 박재란은 정상의 자리에서 돌연 결혼을 발표했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박재란은 “내가 가정에서 아내로서 역할을 잘 못했다. 연애는 달콤하게 했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내가 너무 바쁘게 일하다 보니 부부지간의 다감한 만남, 외식, 가족끼리의 화목은 (우선순위에서) 제외했었다. 돈만 벌줄 알았다”고 밝혔다.

 

 

 


박재란의 전 남편은 박재란이 벌어온 돈으로 사업을 하여 크게 실패했고 그래도 남편과 살려고 했지만 전 남편의 불륜을 목격한 뒤 이혼을 굳게 결심했다고 한다.

 


박재란은 "전남편과 다방의 마담이 홍콩으로 도망가려고 다 준비해놨더라"라며 "그때 이혼 결심을 내렸다. '너를 내가 남편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릴 버리고 어딜 가느냐"라고 전하며 분노했다.

 


박재란은 “남편이 무릎을 꿇고 ‘하늘이 두 쪽 나도 내 맘이 변치 않을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변했을 때는 끝난 것’이라고 말했고, 이게 그와 마지막이다”라고 전했다.

 


박재란은 "사실 여자가 결혼 한번 하고 이혼한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한 번 죽는거다. 제가 우울증 와서, 정신 이상, 우울증 환자 입원시키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 입원도 했다. 이혼하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퇴원했는데도 이 마음이 안 가라앉더라. '그래, 내가 여기서 떠보자, 다른 나라로 가보자, 그러면 내 아픔이 없어지지 않겠나' 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딸 둘을 데려가려고 했는데 전남편이 안된다고, 못데려간다고 차단시켰다. 참 저를 아프게 했다. 그렇게 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고 슬픔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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